EXHIBITION
작가노트
계속 채워지지가 않는다...무언가 늘 부족하고 갈증이 나는 건 왜일까? 어서 채워져서 그림이 되어야 하는데..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리는데 걸리는 그 시간과 기간이 점점 늘어난다. 조급해지려고 한다. 세월을 탓해야 하나..
무디어진 감정의 촉수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졌나 보다. 빨리 빨리 흡수가 안되니 채워지는데 시간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한가 보다.
겨우 채워져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가끔 한눈도 팔고 살다 보면 또 바닥이 드러난다.
밑 빠진 독처럼, 작업은 하면 할수록 바닥을 보여준다.
도자기 작업은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물, 흙, 불, 그리고 사람의 손끝으로 이루어지는 도자기의 매력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작은 잔 하나에도 나무 한 그루가, 거대한 숲 전체가 깃들어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렇게 오롯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고, 기쁨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나는 거기서 힘을 얻어, 오늘도 캔버스 작업을 이어간다.
성석진 도예가는 예원학교에 함께 출강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좋아하며, 가까이 두고, 즐기다가 도화원이라는 그룹으로 전시를 같이 한지가 10년이 되었다.
쉬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성작가가 만든 다양한 도자기들의 형태와 질감은 늘 새로운 기쁨과 열정을 선사한다. 나는 성작가가 만들고, 가마에서 초벌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지만, 나머지 후작업까지는 모두 성작가의 몫이다. 그 섬세하고 고된 작업을 혼자서 다 해내니,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나에게 캔버스 작업과 도자기 작업은, 본질적으로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 길을 간다고 할 수 있겠다. 무언가를 보고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동안 쌓아지고 내재된, 보이지 않는 시각적 감성과 경험을, 현실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마음의 풍경화라 하면 될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일상은 같은 패턴으로 무한 반복되고.. 나는 오늘도 캔버스에 점을, 선을 반복적으로 찍고, 긋고, 건조시키고 또 올리는 과정을 계속 이어간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나 생명을 유지하는 삶을 위한 반복적 행위는,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처음으로 캔버스 작업과 도자기 작업을 한 공간에 모아서 전시해본다. 설렘과 걱정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이번에는 마음이 가득 채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소망을 가져본다.
2026.6.3
작가 노트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은 아주 평범한듯 보여서 기억되지 못하고 지나쳐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이야말로 크고 작은 일들로 스펙타클하게 지나가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모험과 같은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간혹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삶이 반복되는듯 보여도 그 사이 사이 틈틈이 일어나는 알 수 없는 변수들이, 내가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나의 미래들이 순간 순간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 모험이 재미있어지는 게 아닐까? 그 알 수 없는 변수들이 그날의 하루를 기억되게 하고, 나를 성숙하게 하며, 나를 알아가게 한다. 그렇게 일상을, 변수가 일상인 여행처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마치 하루 하루 모든 게 재미있고 새로운 어린아이처럼 숨어있는 작은 행복들을 찾아 낼 수 있길. 세상에 부딪치고 깨지며 생긴 내 안의 크고 작은 편견들 대신, 하루쯤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시선으로 사람을 마주할 수 있길. 그렇게 내가 마주한 공간들을 통해 불안한 내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새로움들이 가득할, 모험과 같은 오늘을 여행처럼 즐겨 버릴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의 작은 일상들 속에서 예술을 만나고 재미를 느낀다. 내가 선택한 장면들은 의식적으로 목적하지 않고 지나치는 하루의 순간들, 그 일상 속 공간들이다. 나는 그 평범한 공간들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저 스쳐갈 공간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나의 방식으로 그 개성에 따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한 나의 공간 속에는 사람이 없다. 분주하고 빠른 일상 속 자기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부담 없이, 사람의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람들 속에서 나를 판단하기 바쁜 세상 속 온전히 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 내가 나를 찾아 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내가 주인공인 각자의 일상에서 매일 작은 새로움을 찾아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이 일상도 언젠가는 소실되어 낯설어질 수 있음을 생각하며 그 모든 하루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그런 작은 특별함 들이 모여 기억될 만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평범함 들이 저마다의 특별함으로 빛날 수 있길, 그리고 그 별것 없는 평범한 공간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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